날씨는 흐리니까
시를 읽고 싶어
시를 읽었네
누누이 말하지만
나는 흐린 날을 좋아해
흐린 날보다
흐린 날 방에 머무는 걸 더 좋아해
정확히는 흐린 날 방에서 마시는
커피를 더 좋아하지
시를 읽으면
그의 삶을 대신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
나는 페이지를 쉽게 넘기다가도
쉽게 다시 돌아오곤 한다
싸구려 원두로 내린 커피
첫 잔은 200ml
잔에 딱 70%
그래야 두 번째 잔의 기대감을 가질 수 있거든
흐린 날 방에서 마시는 커피보다
방 어느 한구석 노란 램프가 더 좋아
그리고 그보다 그 옆에서 흘러나오는
플레이리스트를 더 좋아해
이해하니?
시집만 읽다가는 슬픔에 처형 당할 것만 같아
오늘 친구는
선물 받은 적어도 한 번은 이미 읽혀진 시집의
접혀진 꼬투리에 대해 이야기했지만
친구의 이야기는 접혀 이미 버려져
더는 알 수 없고
나는 두 번째 커피를 잔에 채운다
처형을 좀 미룰 수 있을까요?
그러나 이곳이 내 방이 아니라
어느 한 카페였다면
한강이 보이지는 않아도
녹두전 집 냄새가 줄줄 새어드는
날은 흐리고
간간이 비가 내리겠지
비는 세다가도 약하지
창에 걸친 좁은 바에 앉아
한눈을 팔 때
햇빛은 거짓말처럼
내 왼 검지와 중지 사이로
나도
적어도 한 번은 이미 읽혀진 시집을
그 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적 있지
그의 마음을 더 잘 알고 싶어
시 읽기 대신
꼬투리만 자꾸 만지작 만지작
흐린 날이 좋니?
왜?
흐린 날에는
누군가의 맑은 날을 대신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
접혀진 꼬투리로 시작하는 시에는
더 끔찍한 마음을 두게 되기에
나는 창에 걸친 좁은 바에 앉아
접힌 꼬투리의 삶을 대신 살기로 한다